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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천서(羅天瑞)

나천서(羅天瑞)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내용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나천서羅天瑞



나천서(羅天瑞, ?~?)의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정백(定伯), 안정 나씨(安定 羅氏)의 시조이다.  신라 말 이곳 출신인 부자정승(父子政丞) 나인(羅認)과 나천업(羅千業, 孤雲 崔致遠 聘父)의 후손이니, 나천서는 의성 출신의 세 번째 정승이 되고 안정 나씨(安定 羅氏)의 중시조이다. 고려 말에 문하시중에 까지 오른 공신이자 충신이다 .

공민왕 19년 8월에 압록강 너머로 밀려난 원나라의 동녕부(東寧府)를 정벌하였다. 원명(元明) 세력이 교체되어 가는 때에 오랜 세월동안 고려를 괴롭히던 동녕부를 뒤쫓아 따라가서 공격하였다. 가는 곳 마다 많은 전과를 거두고 승승장구로 정벌하였으나, 그 해 11월에 주민들에게는 귀순을 권하고 추위에 견디기가 어렵고 배가 고픈 군사를 거두어 잘 수습하고 무사히 돌아왔다. 이 정벌의 성과는 고려 조정의 오랜 숙원이던 북진정책 실현의 일환으로서 조상들의 실지를 회복하려는 집념이라 평가하여 역사적 거사로서 기록됨이 당연하다. 그러나 무력한 고려는 이 땅을 지키지 못하고 내분으로 인하여 포기하고 말았다.

나천서는 군공으로 삼중대광 문하시중 평장사(三重大匡 門下侍中 平章事)에 오르게 되고 안정백(安定伯) 겸 안천군(安川君)으로 봉하는 국은을 입게 되었으니, 의성군 내에서는 역사상 가장 현직에 오른 분이 되었다. 그러나 고려가 망하고 이태조의 권유를 외면하면서 아들 직경(直卿)을 데리고 안정으로 돌아왔다. 일찍이 출사 때에는 북진대업에 공훈을 세워서 민족의 한을 설원 하였고 나라가 망하니 부귀영화를 버리고 충절을 지켜 숨어버린 위업을 남겼다. 의성군 안계면 안정리 해망산에 묘가 있고, 위패는 청주 홍양사에 후손들과 함께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