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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송(吳千松)

오천송(吳千松)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내용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오천송



  
<고효자가선대부해주오씨수려유지비>                                             <소원정>                                            
 


본관은 해주(海州). 고려징사(高麗徵士) 오국화(吳國華)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오충지(吳忠智)이고, 어머니는 진산 강씨(晉山 姜氏)이고, 부인은 이상지(李祥之)의 딸 경주 이씨(慶州 李氏)이다.

오천송(吳千松)[?~1639]은 경상도 의성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전해진다. 아버지인 오충지가 사망하자 묘소를 구봉산 넘어 어의곡(於義谷)에 모셨다. 당시 집은 의성 읍내에 있었기에 거리가 멀어 부친의 시묘와 모친 진주 강씨의 시봉에 어려움이 있게 되자, 아버지의 묘소와 집의 중간 지점인 현재의 소원정(遡源亭) 터에 여막을 짓고 3년간 조석으로 양쪽을 오가며 정성을 다하였다. 하루는 구봉교(九峰橋) 근처의 냇물이 불어 건널 수 없게 되자 하늘을 보고 우러러 비니 물이 갈라져서 쉽게 건널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에는 현재(縣宰) 이여온(李汝溫)을 도와 군공을 세워 벼슬을 하사받았다 전해지지만 당시 활동에 관한 구체적인 사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오천송의 효행이 알려져 면세의 혜택이 주어졌으며, 임진왜란 때의 군공을 인정받아 가선대부 판중추부사 벼슬을 하사받았다. 의성군 의성읍 팔성 3리 구봉산 아래 소원정 뒤에 오천송의 유허비인 효자 가선대부 해주 오공 수려 유지비(孝子 嘉善大夫 海州 吳公 守廬 遺址碑)가 있다. 성재(省齋) 권상익(權相翊)이 비문을 지었다.
 


* 찾아가는 길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 7-3


[출처] 디지털의성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