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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金光粹)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내용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학자, 김광수金光粹
김광수(金光粹, 1468~1563)의 자는 국화(國華), 호는 송은(松隱), 본관은 안동이다. 고려 중흥공신이며 출장입상의 경륜을 가진 충열공 김방경(金方慶)이 그의 9대조이며, 고려 말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지낸 바 있는 김구정(金九鼎)을 모시고 사촌으로 입향한 감목공 김자첨(監牧公 金子瞻)은 그의 증조부이다. 조부 김효온(金孝溫)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박팽년, 최항 등과 문과 동방급제하여 친교가 있었으며, 북평사(北評事)와 지례 현감을 역임하며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김극해(克諧)가 그의 아버지다. 외손자는 임진왜란 시기 활동한 서애 유성룡이다.
김광수는 일찍이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서 수학하다가 연산의 정란을 예견하고 대과와 관직을 단념하고 귀향하여 기수 남안에 영귀정(詠歸亭)을 지어 시를 읊으며 은둔 강학하니 당시의 선비들이 송은거사(松隱居士)라 추앙하며 모여 들었다. 거실 서편에 우뚝 서 높푸른 만년송 아래 청빈을 벗삼아 살다가 소안백발의 지상선인 처럼 타계하니 향년 96세 였다.
김광수의 학문과 덕망은 당시 영남일대에 알려졌고 그 후손에 이름난 선비가 연세 상전하여 대소 등과한 이가 50여명에 이르렀다. 숙종 11년에 공의 학덕을 추모하여 사림의 공의로 장대서원(藏待書院)에 제향했다. 저서로는 경심잠(敬心箴)과 송은집이 있다.
찾아가는 길
영귀정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명고길 592-7(서변리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