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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면 빙산사지오층석탑

금성면 빙산사지오층석탑
종 목 보물 제327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유 자 국유
소 재 지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산70번지 (춘산면 빙계계곡길 129-9)


의성 빙산사지 오층석탑은 경상북도의 아름다운 경치 8경 가운데 한 곳에 속하는 빙계계곡 안에 있다. 빙계계곡에 널려있는 바위구멍에서는 한 여름일수록 더욱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이름하여 빙혈(氷穴)과 풍혈(風穴)이다. 그 옛날의 빙계 8경이 무색할 정도로 조성된 관광지에 매년 여름이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빙계계곡 안에 있는 마을이 빙계 3리, 서원마을이다. 서원마을 뒷산인 불정(佛頂) 자락 아래에 빙산사지오층석탑이 우뚝하게 솟았다. 이 탑은 돌을 벽돌탑처럼 다듬어 쌓은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8.15m 높이의 탑이다.

탑의 토대가 되는 제일 아래 바닥돌인 지대석은 16개의 돌로 이루어졌다. 기단의 가운데 돌인 중대석은 기둥돌(우주와 탱주)과 면을 이루는 석재를 각기 달리하여 15개의 돌로 구성하였다. 기단의 맨 윗돌인 갑석은 8개의 돌로 되어 있으며 괴임을 높게 하고 홈을 판 위에 1층 몸돌을 얹었다. 탑신부를 보면 1층 몸돌은 네 모서리에 각기 다른 돌로 모서리기둥을 세우고 정면에 네모진 공간인 감실을 마련해 놓았다. 이 공간은 불상 등을 모셔두는 용도로 쓰였다. 2층 이상부터 몸돌은 그 높이가 1층에 비해 반 이상 줄었으며, 5개의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4단씩이다. 지붕돌의 경사진 면은 각 5단의 층으로 이루어졌다. 정상의 머리장식부분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만 남아 있다.

이 석탑은 의성 탑리 5층석탑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면서 각 부의 양식은 더욱 간략화되거나 중해지고 있다. 기단부 중대석에는 모서리 기둥인 우주와 가운데 기둥인 탱주가 새겨져 있을 뿐 1층 몸돌에는 기둥새김의 흔적조차 없어서 전탑 쪽에 가까운 구조를 띠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로 보아 이 탑의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 후기∼고려 전기 사이로 추정된다. 의성탑리오층석탑에 비하여 격이 떨어지나 벽돌탑 양식의 석탑으로서 아름다운 작품이다.

의성빙산사지오층석탑은 1973년에 완전히 해체․보수되었다. 그때 3층 몸돌의 석함 속에서 사리 장치가 발견되었다. 금동사리외합 안에 푸른 유리로 만든 사리병이 들어 있었고, 그와 함께 불상 광배로 보이는 얇은 금동판과 풍탁 등 여러 공양구가 함께 나왔다. 이 사리 장치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이 곳에는 통일 신라 때 세운 빙산사(氷山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아직도 주변에는 석축과 주춧돌, 기와 조각들이 남아 있다. 탑의 정북쪽에 50평 규모의 금당(金堂)이 있었다고 하는데 조선 1406년(태종 6년)에 왕명으로 절을 폐사시켰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영천이씨 산운리 입향조인 학동(鶴洞) 이광준이 중심이 되어 장천서원을 빙산사지로 이건하여 빙계서원이라 이름을 고치고 회재(晦齋) 이언적을 추향하였다. 원래 장천서원은 1568년 의성읍의 구봉산록에 처음 세워 모재(慕齋) 김안국을 제향하였고 1576년에는 사액(賜額)까지 받았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서원이었다. 빙계 서원은 그 후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2003년 유교문화권사업의 일환으로 빙계 계곡의 서쪽 입구에 재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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