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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 김광수

송은 김광수
푸른 선비의 기품이 있는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

내용


푸른 선비의 기품이 있는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

 


  
<영귀정>                                                          <송은 선생 묘소>



김광수(金光粹) 충렬공 김방경의 후손으로 자는 국화(國華), 호는 송은(松隱)이며 본관은 안동이며 만취당 김사원의 증조부, 서애 류성룡의 외조부이며 지례현감을 지낸 아버지 김극해(金克諧)와 어머니 연안 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을 뿐 아니라, 천성이 고요하고 맑았으며 부모를 잘 섬기고 이웃 어른을 공경했다고 한다
1501(연산군 7) 진사시에 합격해서 성균관에 들어가 전도유망(前途有望)한 청년으로 입지를 넓혀 성리학은 물론 역학(易學)에도 능해 원로들의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연산군의 폭정이 계속되고 사화로 올곧은 선비들의 희생이 늘어나자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단념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한 그루 향나무를 심고 자호를 송은(松隱)이라 하고 병봉산 언덕에 영귀정(도 문화재자료 234)을 짓고 후학을 지도하며 은둔생활을 하였다.
 
영귀정(詠歸亭) 정자의 당호는 논어에서 공자가 증점(曾點)의 생각을 묻자 이에 증점이 답한 욕호기, 풍호무운, 영이귀(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운에서 바람을 쐬며 읊조리다가 돌아온다.) 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정자를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500년경으로 추정하며 처음에는영귀모암(詠歸茅庵)’이라고 하였다가 이후 퇴락하여 1780(정조 4)에 후손인 함인재(含忍齋) 김종록이 주관하여 중수, 복원하고는 영귀정(詠歸亭)이라 하였다.
 
사가(私家)의 목조 건축물로 오래된 보물 제1825호인 만취당(晩翠堂) 주변에는 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500년이 족히 넘는 향나무 만년송(萬年松:경상북도 기념물 제107)이 푸르름을 머금고 서있다. 만취당 마루에서 만년송을 바라볼 수 있으며 뒷문 위에는 선생이 직접 지은 시가 걸려 있다.
 
선생은 후손에게 전한 10개 항목으로 쓰여진 경심잠 (警心箴)이란 경계의 글을 남겼다.
필사본 1책으로 선생이 사습(士習)을 진작시키고 자손에게 예의를 가르치기 위해서 집필하였으며 앞머리에는 저자의 서문, 끝에는 저자의 간략한 약력이 수록되어 있다부모에 대한 효도나라에 대한 충성에서부터죄 짓지 말 것을 당부하는 내용과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가 담겨져 있다.
 
축약한 내용을 보면
1) 사친(事親) - 어버이 섬기는 일 2) 보군(輔君) - 나라에 충성할 일 3) 제묘(祭廟) - 제사를 받드는 일 4) 정가(正家) - 집을 바르게 다스림 5) 우애(友愛) - 형제자매 화목할 일 6) 근형(謹刑) - 형벌을 삼가할 일 7) 폐참(廢讒) - 남을 헐뜯지 말 일 8) 신색(愼色) - 여색을 삼가할 일 9) 결우(結友) - 친구를 잘 사귀는 일 10) 안빈(安貧) - 가난하면서도 분수를 지키는 일
10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촌마을에는 유독 의병에 앞장 선 분들이 많다.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에 집중했지만,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는 분연히 일어섰던 것이다. 임진왜란 때 김사원 삼형제 등이 의병 활동에 참여했으며 명성황후 시해 후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도 사촌마을에는 의병을 배출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시촌마을에는병신창의기적비(丙申倡義紀績碑)’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나라를 구하기 위한 창의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송은선생이 만년송을 심고 절의를 지킨 것과 관련해 후손 만취당 김사원, 독수헌 김사형, 후송재 김사정 삼형제는 각각
만취당(晩翠堂: 만년송 푸른 빛이 가득한 집)
독수헌(獨秀軒: 만년송의 빼어난 기개)
후송재(後松齋: 만년송 뒤뜰에 있는 아늑한 집)
이렇듯 삼형제 모두 선조의 뜻을 잊지 않고자 만년송과 연관 지어 호를 지었다.
 
사촌마을에는 큰 난이 있을 때마다 임진왜란 때는 만취당 김사원, 정묘호란 때는 자락당 권수경, 병신창의 때는 운산 김상종 등 오직 나라를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난 의병정신이 곳곳에 남아있는 안동김씨 집성촌이다선생의 만년에는 자연 속에 은거하며 영귀정에서 시가를 읊으며 지내다가 96세에 세상을 떠났다. 사후 봉양 장대서원에 배향되었으며 묘는 점곡면 명고에 있다. 문집으로송은집저서에 소개한경심잠등이 있다.
 
 
 
 
찾아 가는 길
만취당: 의성군 점곡면 만취당길 17
영귀정: 의성군 점곡면 명고길 5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