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상(張漢相)

장한상(張漢相)
조선 후기 비안현 출신의 무신

내용


조선 후기 비안현 출신의 무신, 장한상張漢相



  


장한상(張漢相)(1656-1724)의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필경(弼卿), 아버지는 경기도 수군절도사(京畿道 水軍節度使)를 역임한 장시규(張是奎), 어머니는 진성 이씨眞城 李氏)이다. 날 때부터 영특하고 그 눈의 광채가 사람을 비춰보아 선인 같은 위의가 있었다고 전한다. 아버지의 무맥을 이어내려 1676년(숙종2)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서총대(瑞摠臺)에서 시예할 적에 왕이 나와 그를 보고 크게 찬탄하고 포상하였다.

선전관 훈련부정으로 시작하여 회천 자산 옥천 칠곡 영변 회령 등지의 수령을 거치는가 하면 충주. 삼척의 영장(營將), 경기수군절도사,
전라경상 좌우도병사 함경북도 병마절도사에 이르기까지 그의 행적은 폭이 넓고 컸다. 당대 제일의 출중한 무사로서 정평을 받았고, 삼척 영장으로 부임하여서는 울릉도의 경비를 엄히 하여 나라의 근심을 덜고 독도를 우리 땅으로 기록하는 최고의 기록도 남겼다. 바다 건너 멀리 일본 통신사절로 갔을 적에는 일인들도 그의 기개에 눌렸을 정도로 위상이 높았으니 모두들 아버지의 공적을 능가 하였다고 전해진다.

1724년(경종4) 2월 19일에 한양 체류 중 사위 병조판서 이삼(李森)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조정에서는 군사를 보내어 호위하고 고향으로 반장하였고 예관을 보내어 사제문 치제하니 드물게 보는 양대의 영광이었다. 이어서 훈권에 기록되고 부조 위전으로 영구 봉사가 명하여졌다. 산소는 지금의 비안면 외곡리 백학산 동쪽에 위치해 있다. 부친인 장시규(張是奎)와 더불어 경덕사(景德祠)에 봉향되어 있다. 경덕사는 1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의 건물은 중수, 중건된 것이다. 경덕사 옆 유물관에는 장시규·장한상과 관련한 고문서와 각종 유물을 전시해 놓았으나 일부 유물을 제외하고는 현재 의성 조문국 박물관에 위탁 보관되고 있다.



찾아가는 길
경덕사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용사리 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