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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문국의 역사
조문국의 역사
내용
신라는 부족국가를 정복하면 나라를 폐하고 주 ·부 ·군 ·현의 행정구역으로 편입시키면서 이름은 그대로 두는 것이 통례였 다. 삼국사기에 "조문왕 2년(231) 7월에 감문국을 토파하고 그 땅을 군으로 하였고", "법흥왕 19년(532) 3월에 금관국의 왕 김구해가 항복하므로 그 땅을 금관군으로 하였다. "는 예로 보아 조문국이 멸망하고는 조문군이 되었을 것이다.
문무왕 13년(673) 9월에 조문성을 쌓았는데 이 이름은 당시 조문군의 명칭에서 붙인 것으로 본다.
서기 700년경에 축조한 것으로 보는 탑리리의 5층 석탑도 처음에 조문탑이라 한것이 조문군이 폐하고는 산운탑으로 개칭 했다. 김정호의 대동지지(1864)에 "조문국이 멸망하고 조문군이 되었다" 한 것도 위와 같은 견해일 것이다.
여헌 장현광이 쓴 백장령의 비봉설에 관한 기문에서 "조문이 800년간의 긴 복록을 누렸다. "함은 조문국이 기원 전후에 건 국하여 조문군을 거쳐 경덕왕 16년(717)에 문소군이 된 때까지의 기간을 가르킨듯 하다.
경덕왕릉에 관한 전설에 오극겸이 꿈에서 얻은 시 "천년 지난 오늘에 경덕분만 남았도다." "조문의 거문고 가버린 지금"이 란 구절 등에서 전설의 발상 시기가 현령 이우신이 묘를 증축하였다는 영조 원년(1725)과 맞물려 나가므로 이 1000년은 조 문군이 폐한 때부터의 기간이 되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조문국과 조문군의 역사를 같은 조문의 테두리에서 인식하는 경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