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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홍배
제목 시(詩)를 생각하다/최명원
작성일 2016-08-16 09:06
조회수 490
시(詩)를 생각하다
최 명 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

  몇 달 전에 모 일간지로부터 기획연구의 제안을 받고 간단한 실험연구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 기획 의도는 종이 인쇄물과 SNS 매체를 통해서 정보를 전달했을 경우, 어느 매체를 통해서 전달된 정보가 여섯 시간 후의 리콜 수행능력에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된 실험에서 종이 인쇄물로 정보를 전달했을 경우 SNS 매체로 전달했을 때보다 평균 약 40%정도의 높은 수행결과를 보였다.

  실험연구를 기획하면서 객관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네 가지 종류의 상이한 텍스트가 선정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열 줄짜리 詩로 가장 짧은 글이었다. 상이한 텍스트 종류들의 교차 비교 관점은, 한편으로는 정보를 담은 텍스트 길이의 차이와,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픽 위주의 정보를 글로 기억하는 것과 詩가 담고 있는 글의 내용을 이미지화 하여 기억하는 것의 차이였다.

종이에서 읽힌 시와 SNS에서 보여진 시

  예상치 못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 텍스트는 시인 정승화님의 ‘부활’이라는 ‘詩’였는데, 이 시를 선택하게 된 것은 정승화님의 시가 이미지화하기에 좋은 시라는 지인의 추천을 받아서였다. SNS로 시를 읽은 학생들은 종이 인쇄물로 시를 읽은 집단과의 비교에서는 물론, 다른 텍스트들과의 비교에서도 가장 낮은 수행능력을 보였다. 단 열 줄에 불과한 짧은 글이었음에도.

  전체적인 실험결과는 SNS를 매체로 텍스트를 제공했을 경우, 학생들이 텍스트들을 읽은 것(reading)이 아니라 그냥 본 것(seeing)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왜 詩인가?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언어’를 가지게 되었다. 언어를 가지고 만물에 이름을 붙이고, 이름을 불러주면서 나와의 관계 안으로 끌어들여 소통의 도구로 삼았다. 비단 이름뿐만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서 생각과 감정도 표현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뒤집어보면 내가 말하는 그 ‘언어’ 안에 말로 된 모든 것이 갇혀버리는 결과이기도 했다. 내가 ‘아프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그냥 아픈 것이다. 내가 ‘빨갛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그냥 빨간 것이면 됐다. 아픔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천차만별의 그 세세한 항변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저 ‘아픈 것’일 뿐이고, 저마다 조금씩 다를 수십 수백 가지의 빨강들이 그저 ‘빨간 것’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詩는 아니다. 침묵과 함축 사이에서 언어가 몽땅 가져가 채워버릴 그 존재의 틈새를 열어주는 것이다. 詩의 빨강은 그냥 빨강이 아니다. 침묵에서, 詩語가 자리를 내어준 그 함축의 행간들에서 숱한 사연을 가진 빨강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詩의 아픔 안에는 차마 말이 되지 못한 저마다의 더한 아픔들이 숨죽여 울고 있다. 그래서 詩다.

시(詩)에서 누리는 여백의 자유

  우리는 언어를 가지면서 우리 생각들을 그 안에 꾸겨 넣는 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한정하고 구속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詩는 그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의 항변이다. 툭 던져진 것 같은 외마디 詩語에서 수백 가지 상상과 생각을 그려 넣어 공감할 수 있는 여백을 누리는 자유. 그래서 詩다.

  누군가 그랬다. 인간의 언어로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작업은 문학이며, 詩는 문학의 꽃이라고.

  실험결과가 말해주듯 SNS 매체는 詩가 열어 놓은 여백의 자리에 생각을 그려 넣을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세돌 구단을 이긴 인공지능도 詩를 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詩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던 시인 동주의 마음일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 한 번 ‘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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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배 2016-08-17 06:52:01 
신세훈 선생님께서 오셨네요. 몇 해 전 신선생님의 강연이 문득 생각납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부활'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 시를 얼른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섭니다. '침묵과 함축사이' 김선생님 글 잘 봤습니다.
김금숙 2016-08-16 10:43:55 
시인 정승화의 시 '부활'을 제가 읽지 많은 시라서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시를 찾지 못해 그 시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를 꺼내기가 그래서 일단은 그 시를 찾아 읽어보고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시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저께 의성을 다녀 가신 대시인 신세훈님이 생각납니다. 의성 사곡이 고향이신, 설명이 별로 필요없는 원로시인이시지요. 고향 사랑이 깊으신 분이시지요. 저녁 식사후 이런 저런 시 이야기며 문단 이야기를 했지요. 정말 오랜만에 저도 시 이야기를 서울에서 신세훈 선생님과 함께 내려온 시인들과 밤늦게까지 했는데 그 자리에서도 시의 본령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시는 위의 글에 나오듯이 '침묵'과 함축 사이' 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침묵과 함축이 없는 시는 시라기보다 그냥 감정의 노출일 뿐이지요. 시인들의 고민은 시에 어떻게 사유를 담을 것인가의 문제와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시는 입으로 읽는 것보다. 눈으로 읽는 것보다, 가슴으로 읽을 때 가장 시가 살아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 의 글에 나온 시 '부활'을 읽고 다시 시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한번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김홍배 2016-08-16 09:09:48 
연구소 위원님 영화 <부산행> 소감 몇 자 부탁드립니다. 김금숙 위원님 윗글에 대한 논평도 한 줄 부탁드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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